뚜디아방 이야기

차를 좋아하지만 차가 없다. 차가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돈이 없으니까. 평균적인 대한민국 25세 남자는 차가 없다.

결국 드라이브를 즐기려면 남의 차를 빌려야 하는데 산간 오지에 위치한 우리 동네에 카셰어링 업체들의 대여존이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다행히 쏘카가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두둑한 시리즈 B 펀딩을 유치하면서 수도권 지역으로의 확장이 빨라졌고, 우리 동네에도 2016년 초, 드디어 쏘카존이 설치됐다.

(오오 갓카 오오)

처음 배치된 차는 아반떼였는데, 당연히 레이가 들어올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아반떼와 레이는 기본 대여요금에서 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일부러 비싼 차를 들여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동네 첫 쏘카로 아반떼가 들어온 덕에 쏘카가 촌시러운 우리 동네에서 빠르게 정착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우리동네 아반떼 <뚜디아방>을 진심으로 아껴줬고, 지금도 아끼고 있다. <뚜디아방>은 자차 없이 드라이빙 라이프를 개막시켜 준 고마운 차이자, 가끔 지하철 타고 학교 가기가 너무나 싫을 때 나를 구원해주는 든든한 탈것이고, (엄마 몰래) 멋진 경치도 마음껏 보러 다닌 여행친구이기도 하다.

(뚜디아방을 만나러 가는 길.)

쏘카존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원래 5분 거리였는데 장사 안돼서 옆단지 구내주차장으로 이사감. 5분이나 10분이나 진배없고 반복된 드라이브로 약해질 하체 근육을 강화해주는 고마운 패시브 효과가 있다.


(신축 아파트단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카셰어링 전용 주차공간.
특히 젊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쫓겨나(…)정착하는 우리 동네같은 단지에는 더더욱 카셰어링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다.)

아파트는 새것이 좋다. 지하주차장(사실 이 아파트는 지상에 주차공간이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는 이 쏘카존에 나의 사랑 <뚜디아방>과 아직 사랑받지 못해 이름불려지지도 못하는 넥스트 스팤 한 대가 배치되어 있다. 칸은 세 칸이 그려져있는데 아직은 두대로 충분한 모양.

(아직 2만킬로미터도 안 뜀.)

시간에 맞춰 쏘카존에 도착했고, 이제 내 회원카드와 스마트키로 차량을 통제할 수 있다. 이제 시동 걸고 쏘면 되는….건 아니고 쏘카의 제어권을 넘겨받자마자 반드시 체크해야 할 일들이 있다.

  • 내부 기스 및 망실 품목 확인. (하이패스는 대여시간에 딱 맞춰서 들어옴- e.g. 당신이 16:30부터 대여 시간을 잡았다면, 차 문은 16:20부터 열리겠지만, 하이패스 카드는 16:30부터 인식됨.)
  • 차량외부 스크래치 및 파인 자국 확인. 특히 B필라/앞 뒤 범퍼 집중적 확인.
  • 앞사람이 버려놓고 간 쓰레기가 있는지 확인. 반납시 치워주는 센스..
  • 라이트/와이퍼 조작방법 확인, 시트 포지션/미러 포지션 확인 및 조정.

의 단계를 모두 수행해야 당신은 비로소 차를 예열하고 도로에 뛰어들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사실…..별 필요도 없이 걍 기분이 꿀꿀해서 차를 빌린 것이라 딱히 목적지가 없었다.

목적지 없는 김포시민이 드라이빙에 나서면 가볼만한 곳은, 역시 강화도다. 그래 강화도로 가자. 강화도까지는 대략 30여분이 소요된다(내비게이션 최단 경로 기준).

나에게는 나만의 루트가 있으므로 그거보다 좀 더 걸린다. 48번 국도를 쭉 타고 올라가다 취향에 따라 강화대교나 초지대교를 이용하는 것이 정석적이지만 나는 검단을 거쳐 양촌을 찍고 초지대교로 올라타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강화도에 접어들면 동막 해변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

동막 해변 특유의 호젓함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꽤 자주 이곳에 방문했는데 주차 공간에 차가 다섯 대 이상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가로변 주차를 대폭 허용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냥 도로를 달리다가 칸에 대충 집어넣고 P단 집어넣고 사이드 땡기면 주차 끝임.

물론 민폐주차 하란 얘긴 아닙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최소한 칸에는 넣으란 얘기에요. 아 그리고 평일엔 주차비 무료임. 주말엔 돈 받음. 한시간당 600원이던가….

(분위기 직이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평일 낮에 가면 물이 빠져있다는 점

물빠진 오션뷰의 아쉬움은 먹거리로 달랜다. 주차장 맞은편에 편의점이 모여 있다. GS25의 신제품 홍석천버거를 맛봤다.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내가 이 사진을 토준맘한테 보내줬더니, 홍석천 머리밖에 안 보인다 카더라

이로써 뚜디아방과의 아주 짤막한 데이트를 마쳤다. 사실 더 드라이브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영맨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아이오닉(HEV) 시승이 잡혔다. 오예.

조립은 분해의 역순, 반납은 대여의 역순입니다. (편도 이용이 아니라면) 대여한 자리에 차를 잘 갖다두고, 혹여 내가 차에 스크래치나 생채기를 내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발생시킨 쓰레기를 잘 처리한 다음 <바로반납> 기능을 이용하거나 그냥 시동 끄고 문을 잠그고 차를 버려두면 알아서 반납처리가 된다.

반납처리가 이뤄짐과 동시에 무지막지한 주행요금과 하이패스 결제요금이 당신 카드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가끔 뻔뻔하게 자기차 세워놓는 차주분들 있음)

이 글을 작성한 시점에 <뚜디아방>의 누적 주행 거리가 2만km을 돌파했다. 보통 렌트카의 A급 유지기간을 2만km 내외로 본다. 2만 넘게 뛰면 차가 헐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쏘카가 보유 차량에 대한 내구연한을 어떻게 잡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평범한 아반떼AD 렌트카가 (아무리 잘 손질된다 하더라도) 5만 이상을 뛰는 건 정말 무리일 것이다. 내년/내후년 쯤에 <뚜디아방>이 쏘카의 fleet에서 퇴역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쏘카가 퇴역 차량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뚜디아방>을 인수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사실 <뚜디아방>은 허짜 번호판 붙이고 뛴 주제에 연료도 가솔린이라서 중고차 마켓에서 별 인기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혹시 어디 중고로 내놓으시려거든, 그때까지 돈 많이 모아놓을 테니까 제발 나한테 좀 팔아줘요.

201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