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쉐보레 볼트 EV 시승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충전 없이 갈 수 있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도 머리 안 닿는 자동차, 사고싶어도 못 사는 자동차 등 이 차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정말 많지만 나는 아래의 광고가 이 차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50km ~ 190km을 달리는 전기자동차도 충분히 훌륭하고, 특히 시계를 벗어날 일이 없는 운전자에게는 훌륭한 통근수단 옵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볼트 EV는 300km대 후반의 레인지를 확보해 장거리 주행은 물론이고, 전기차 운전자라면 으레 감내해야 할 "잔여 거리 불안감" 을 제대로 해소시켜줬다. 말하자면, 오늘 밤 주인공이 내가 된 것 같은 날, 100km도 안 남은 주행거리를 보며 드라이브 욕구를 애써 삼키는 대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로든 액셀 페달을 밟을 수 있단 얘기다. 

배터리를 아낄 방법을 "공부" 하며, 내가 닿고자 하는 목적지에 가는 최적의 주행 경로를 "계획" 해야 하던 전기차의 시대를 과감히 청산하고 일상에서 자연스레 탈 수 있는 전기차의 시대를 개막한 것이다. 

전기차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볼트 EV가 국내 시장에 진출한 시점부터 시승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으나, 돈 주고 사기도 어려운 차를 시승하는 일은 (업계사람도 아닌 대학생의 입장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쉬움에 괜히 유튜브에 올라오는 시승기만 반복 재생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번 제주 여행 기간 중 롯데렌터카가 볼트 EV의 시승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나도 드디어 이 새로운 전기자동차를 운전해볼 수 있게 됐다.

"거대한 쇼핑카트처럼 생겼다" 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차의 외관은 전기차/친환경자동차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패스트백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실내 거주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이 차 외관 곳곳에서 엿보였다. 

특히 현대 아이오닉과 달리 뒷 좌석의 머리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무엇보다 뒷유리의 시야를 넓게 확보해 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언급한 김에 좀 더 비교를 해보자면, 현대 아이오닉의 경우 HEV/PHEV/BEV의 세 모델에 패밀리 룩을 적용했기 때문에 순수 전기차 모델의 라디에이터 그릴부가 좀 심심해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볼트 EV는 쉐보레의 디자인 코드를 적용하면서도 앞모습을 세련되게 마감한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이 차는 전방 시야가 넓고 운전석 포지션이 높은 편으로, 골목길 주행에 서툰 초보 운전자나 체격이 작은 운전자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실내 공간은 3~4인이 탑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뒷좌석 플로어 아래에 배터리가 배치되는 전기차의 특성을 잘 살려 2열 좌석 바닥을 평평하게 마감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계기반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직관적이었고 10.9인치 콘솔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정보를 큰 글씨로 제공해줬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미탑재되어 있고 메뉴 화면 진입 시 로딩이 너무 긴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디스플레이, 실제로 보면 정말 크다
직관적인 레이아웃의 계기반.

이 차의 실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트렁크 공간으로, 경차보다 크고 준중형 세단보다 작은 수준의 공간을 제공한다. 쉐보레의 설명에 따르면 트렁크의 용량도 경쟁차종에 비해 적지 않으며 2열 좌석 폴딩 시 충분한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지만, 어떻게 봐도 이 차의 트렁크 공간은, 특히 이 차를 구입하거나 이용할 평균적인 사람들에게는 부족하다. 

언뜻 보기엔 크지만...
캐리어 세 개에 이렇게 된다.

외관 상 차가 MPV 스타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트렁크 공간도 넓을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고, 실제로 나도 그런 오해와 기대(?) 를 갖고 차를 인수받았지만, 내 짐과 일행의 캐리어 두 개를 다 싣고 나니 트렁크가 꽉 차는 모습을 보며 오해와 기대를 일순간에 깰 수 있었다. 특히 여행 목적으로 제주를 방문해 이 차를 빌리는 사람들에게 작은 트렁크 공간은 큰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트렁크에 짐을 가득 싣고 곧바로 도로로 나갔다. 환산 출력 204마력을 뿜어내는 전기 모터는 성인 3명에 여행가방 세 개를 싣고도 거침없이 치고나가는 매력을 뽐냈다. 초반부터 풀 토크가 발생하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전기차의 주행 특성이지만, 볼트 EV는 경쟁 차종에 비해 고출력 전기모터를 채용해 그 장점을 극대화했다. 

80km/h ~ 100km/h 준고속 영역에서의 주행 안정성은,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아이오닉을 능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오닉은 하이브리드/플러그인/일렉트릭 세 모델 모두에서 준고속 주행 시 뒤가 약간 흔들리는 문제가 있다. 물론 아이오닉의 경우 내가 주로 혼자 탑승한 상태에서 시승을 진행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뒷좌석과 트렁크 영역에 하중이 걸린 상태에서 평가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더 정확한 비교가 되었을 듯 싶다. 

전기자동차는 구동계통의 소음이 없기 때문에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이 강하게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수 차례 타면서도 이 점이 늘 거슬렸었는데, 볼트 EV는 주행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동 열차가 출발할 때 느껴지는 전기 모터 구동음이 실내로 유입되는데, 이 소리가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초반 토크와 이에 따른 가속감으로 만들어진 기분 좋은 주행 느낌이 오디오 효과로 완성되는 기분이다. 

"펀 드라이브" 라는 걸 입모양이 말해주는 모습이다.

2박 3일간 500여 킬로미터를 주행했고, 충전은 두 번 했다. 물론 이 자동차의 환경부 공인 주행거리 383km을 감안해 본다면 한 번 정도의 충전으로도 전체 일정을 소화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을 터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가동하게 되고, 주행 가능거리의 30% 정도는 항상 남겨둬야 한다는 일종의 불안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에어컨의 경우 23~24도 AUTO 모드로 작동 시 약 30km 정도의 주행 가능거리가 차감됐다. 

롯데렌터카가 제공하는 전기차 충전 카드는 한국전기차 충전서비스에서 운영하는 <해피 차저> 충전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카드를 이용해 충전하면 충전비가 전액 무료다. 

문제는 이 충전카드를 제공하는 렌트카 업체가 제주 도내에 꽤 많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에서만큼은 해피차저 충전기가 환경부 충전기보다 인기가 많았다. 1일차 일정을 마치고 2일차 새벽에 찾은 조천농협 충전기는 아침 7시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충전을 기다리는 차들이 있었다. 내가 충전을 마치고 나설 때도 충전 차례를 기다리는 차량이 한 대 있었다. 

볼트 EV는 DC콤보 방식 급속충전을 지원한다. 포트 위치는 앞쪽.

여행 중 찾은 두 곳의 충전소는 모두 잘 작동하고 있었고 회원카드 인증도 잘 됐지만(환경부 충전기보다 인증이 더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충전인프라 API 연동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대기중이라고 표시된 충전기에 충전중인 차가 있다던지, 내가 충전을 꽂아 놓은 충전기가 비어 있다고 표시된다던지 하는 자잘한 버그가 있었다. 

상쾌한 주행 느낌에 유류비도 한 푼 들지 않는 볼트 EV를 타고 2박 3일간 제주도 곳곳을 누볐다. 그때 그때 가 보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일정을 짠 바람에 동선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했고, 덕분에 3일간 500km이 넘는 거리를 주행했다. 

고작 500여 km을 타 본 느낌으로 이 차를 감히 평가할 순 없겠지만, 아주 좋은 첫 인상을 받았다. 이 차가 왜 "Game Changer"라는 평가를 받았는지, 왜 출시 2시간만에 완판됐는지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었던 시승이었다. 

트렁크 공간이 좁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차는 나와 같은 제주도 단기 여행객의 렌트카로도 적절하다. 2~3인의 팀에게 충분한 실내 거주공간을 제공하고, 운전자에게는 넓은 시야와 높은 시트 포지션을 제공해 제주의 좁은 골목도 쉽게 파고들 수 있게 해 준다. 제주도청이 제공하는 공영주차장 무료이용 등 각종 전기차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맑은 제주를 지켜야 한다는 과분한 사명감을 제외하더라도, 볼트 EV는 한번쯤 타볼 이유가 충분한 차였다.

(이 포스팅은 롯데렌터카의 시승차량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